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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맨's blog

로스 맥도널드 '지하인간'

나만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서문화사에서 나오는 소설들은 별로 번역의 질을 기대하지 않고 본다.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추리소설들도 그렇지만, 같은 출판사에서 나오는 H.P. 러브크래프트 시리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당히 건조한 느낌의 번역체는 둘째 치고서라도,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거나, 종종 직역스러운 부분도 보인다. 하지만 전공책도 아닌데, 몇 부분의 뜻이 잘 안통한다고 해서 소설을 못읽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는 그럭저럭 읽을만 한데다가, 무엇보다 요즘 세상에서 만원도 안되는 책값은 장점이 된다. 그리고 동서문화사의 추리소설 컬렉션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끔씩 추리소설이 땡길 때면 목록을 한번씩 훑어보게 된다. 이전엔 결말 부분의 사건 설명을 위해 꽉 짜여진 엘러리 퀸 류의 정통물을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산만하다면 산만하다고 할수 있는 하드 보일드물이 좋아지는 것 같다. 취향의 변화겠지.

로스 맥도널드의 추리 소설 중에서 국내에서 번역이 되어 구해서 읽어볼 수 있는 책은 네 권이 있다. 그 중에 세 권이 앞에서 번역에 대해 잠시 불평한 동서문화사에서 발행한 것들인데, '소름','위철리 여자','지하인간'이다. 다른 하나는 '움직이는 표적'인데, 출판사는 잘 기억이 안난다. 추리 소설을 몇 달에 한 권씩은 읽는 편인데, 최근에는 '소름'과 '지하인간'으로 계속 로스 맥도널드의 것들만 읽게 되었다. 그리고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는 긴가민가 하지만 꽤 예전에 '움직이는 표적'을 읽었으니, 이제 네 권중에서 세 권을 읽은 셈이다. 하드 보일드물의 계보를 더쉴 해미트에서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로 이어진다고 흔히 얘기들을 하는데, 더쉴 해미트의 책은 '말타의 매' 한 권밖에 본 게 없지만,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는 전 6권을 다 읽었는데, 로스 맥도널드의 소설들과 조금 비교가 된다.

사실 주인공의 탐정 캐릭터의 매력은 아무래도 하드 보일드물의 아이콘과도 같은 필립 말로에 비해 못하다. 필립 말로 시리즈는 주인공인 필립 말로의 매력에 푹 빠져서 읽는거지, 우연이 남발하는 그리 좋다고는 말하기 힘든 스토리 때문에 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반면에 루 아처는 쿨하진 않지만 직업인으로서의 탐정스러운 느낌이 든다고 할까. 돈 달라는 얘기가 툭툭 나오는 것도 있지만, 필립 말로와는 달리 별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사무적으로 일처리를 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스토리는 훨씬 복잡하다. 읽어갈수록 고구마 덩굴처럼 배배꼬인 관계들이 끌려나오면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기 때문에 나중에는 어서 결말이 와서 뭔가 정리를 해주길 바라게 된다. 대신에 워낙 복잡하게 꼬이다보니 결말부에서 정리가 될 때의 쾌감이 필립 말로 시리즈보다 더 크다. 그리고 저 배배꼬인 관계란 것들은 '소름'에서나 '지하인간'에서나 수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으면서 주변인들에게 트라우마를 주고 있는 배배꼬인 가족사인데, 그걸 보면 '현대 미국 가정의 붕괴' 운운하는 표지에 적힌 괴이한 홍보문구들이 왠지 그럴듯 해보이기도 하다.

이번에 읽은 책은 '지하인간'인데, 역시 기대대로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은 상당하지만, 지난번에 읽었던 '소름'보단 조금 못하다는 기분이 든다. 소름보다 줄거리가 복잡해서 일수도 있겠지만, 뭔가 꽉 짜인 느낌이 덜하달까. 예를 들면 소설의 초중반까지 아처는 제리, 수전, 로니의 세 명의 행방을 찾아다니는데, 뭔가 이 세명을 묶는 뭔가가 있으니까 함께 다니는게 아닌가 했는데, 알고보니 아무 관계가 아니었다라던가. 그럼 대체 수전과 제리는 왜 같이 도망다닌걸까. 그리고 살해당한 스탠리의 경우는 아버지를 찾으려는 동기가 와닿는데, 조금 더 봐주면 제리까지는 알겠는데, 수전이 뜬금없이 불량소녀가 되면서 아버지를 찾으려는 이유는 도저히 뭔지 모르겠다라던가. 내가 설명을 놓쳐서 그러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잘 해명이 안되는 부분이 군데군데 있다. 그리고 증인들의 단편적인 증언들을 하나하나 모아가면서 조금씩 앞뒤가 들어맞는 큰 그림을 만들어가는 부분은 좋았는데, 거의 소설 마지막에 약간의 반전이 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반전을 통해 드러난 실제 범인의 동기가 너무 사소해 보여서 좀 실망스러웠다.

뭐 그다지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있거나 중요한 소식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이게 흥미있고 중요한 소식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폴리오바이러스 쪽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올린다.

Promed mail에 따르면 호주에서 1986년 이후 21년만에 처음으로 폴리오(소아마비)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환자는 22살 먹은 환자로 멜버른에 사는 학생으로 고향인 파키스탄에 가있다가 돌아왔다고 하니, 아마도 파키스탄에서 감염되어서 호주에서 발병하였을 것이다. WHO에서는 폴리오바이러스 박멸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현재 세계적으로 토착성의 야생 폴리오바이러스는 4개국에서만 유행중인데, 나이지리아,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이다. 호주는 WHO의 서태평양 지구에 속해있는데, 서태평양 지구는 2000년에 폴리오 박멸을 선언했다. 폴리오 박멸선언은 국가 단위로 선언하는게 아니라. WHO의 지구 단위로 선언을 하게되는데, 현재까지는 미주 지구, 서태평양 지구, 유럽 지구의 3개 지구만 폴리오 박멸 선언을 한 상태다. 서태평양 지구에 속한 나라에 해외로부터의 유입에 의한 폴리오환자가 발생한 것이 처음은 아닌데, 2006년에도 나이지리아 출신의 환자가 싱가폴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폴리오가 박멸된 나라라고 하더라도, 이렇듯 해외로부터의 유입에 의한 환자가 발생할 수가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폴리오바이러스가 완전히 박멸될 때까지는 높은 수준의 예방접종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방접종율이 높은 국가들에서는 이렇게 산발적으로 유입에 의한 환자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전파가 진행이 되어 유행으로 진행할 가능성은 높지는 않다.

기사 링크는 여기에..

로버트 카파 전기

로버트 카파 전기를 읽었다. 우리 나라에 카파에 관한 책이 두 권이 나와 있는데, 한 권은 '그 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고 카파 본인이 쓴 책이고, 내가 읽은 책은 알렉스 커쇼라는 사람이 쓴 카파에 관한 전기이다. 로버트 카파는 아마도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유명한 보도 사진가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명성은 전적으로 종군 사진기자로서 찍었던 전쟁 사진 덕분이다. 사진의 진위와 연출 여부를 놓고 논쟁이 있었던 스페인 내전 사진 '쓰러지는 병사'나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들은 워낙 유명해서 누가 찍은 건지는 몰라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 사전 정보로도 대충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는 있었다. 그러니까 로버트 카파(본명은 앙드레 프리드만)라는 대단히 유명한 미국인 사진가인척 허풍을 치면서 사진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고, 전쟁터를 찾아다니며 전쟁 사진으로 유명해졌고, 스페인 내전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가장 유명한 사진을 찍었으며,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과 함께 매그넘의 창립자였고, 결국엔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했다는 것 정도는 말이다. 아, 그리고 "당신의 사진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은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 것도 알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사진 관련해서 웹 서핑을 조금만 하다보면 금방 알게 되는 것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카파에 대해 새롭게 갖게 된 느낌은 괴짜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카파는 미래를 계획하고 안정된 생활에 정착하길 원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는데에만 충실하고, 자신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없을 때는 항상 잃으면서도 도박에 몰두한다. 수많은 여자가 꼬이면서도 절대 결혼을 하려하지는 않는다. 인생을 대충 사는 사람이라 매그넘의  책임자로 있는 동안에도 공사를 구별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에는 좌파사상에 경도된 적이 있었으나 생의 후반기에는 특별한 철학이 없었던 것 같다. 전쟁터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으면서도 좀 더 특별한 장면을 더욱 많이 잡기 위해 애쓰고, 사진가로서의 그의 명성도 전쟁터의 복판에서 딩굴면서 그 보상으로 좀 더 특별한 장면을 찍어낸 것에 기인한다. 사진에 대한 얘기에서 특별한 소재를 찾아다니지 말라고 하는데, 그는 죽을 때까지 특별한 소재를 찾아다니면서 명성을 쌓았다. 아마도 그런게 사진작가와 보도사진가의 차이가 아닐까. 전기를 읽으며 그가 위대한 사람이라는 느낌은 받지를 못했다. 그는 훌륭한 사진가였지만 단지 시대를 잘 만난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어쩌면 그가 극단의 시기였던 20세기를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다면 술주정뱅이에 도박꾼으로 뒷골목에서 인생을 마치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당구

부서에 남자직원 6명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당구 치러 다녀왔다. 2:2:2로 팀을 먹고, 테이블당 3명씩 두 테이블에서 게임을 했다. 두 테이블에서의 게임의 순위를 합산해서 꼴찌를 가려 점심 및 당구비를 물리는 방식이었다. 나의 게임 자체는 최악이었다. 원래도 그리 잘치는 실력이 못되지만, 워낙 오랜만에 치는편이어서 밀어치고 당겨치는 것의 조절에 애를 먹었다. 첫 큐에 4개를 떨면서 화려하게 시작했지만, 그 뒤로는 지리멸렬.. 그래도 다른 테이블에서 친 나의 파트너가 그 게임에서 이긴 덕분에 우리 팀은 2등이 확정되었다.

점심 시켜먹으면서 당구 치는 것을 대학 다닐 때는 무척 많이 했었는데, 오랜만에 즐기니 잘 안맞았지만 감격이었다. 덤으로 우리 팀이 꼴찌를 면했으니 더욱 좋았고. 앞으로 주 2번 정도씩 계속 당구 모임을 가질 것이라 하니, 직장에서의 큰 즐거움이 하나 생겼다.



하나의 일을 끝내고.

나처럼 멀티태스킹이 안되는 사람은 한가지 일에 매진하다보면 다른 일거리들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 회사였으면 능력없다고 짤릴 위험에 처할텐데, 다행히도 진로를 잘 선택해서인지 멀티태스킹 능력으로 평가되는 업종은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2년간은 아무리 무능해도 지나치게 불성실하지 않는 이상은 짤릴래야 짤릴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지난 포스팅을 읽어보다보니 올해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정리해서 소식지를 만들라는 업무가 들어온게 6월초인데, 최근에야 그 일이 끝났다. 입력할 데이터가 지난 3달간 250건에 달하는 데다가 - 왠지 갯수가 적어보이지만 입력할 필드가 많다 - 6월에는 거의 1/3은 밖에서 일했기 때문에 일할 시간도 없었다. 주말이나 평일밤에 집에서 일하는 것은 현재 내 개인사정으로는 불가능.. 무조건 직장일은 직장에서 정규시간안에 쇼부를 봐야한다. 근 한달간 짬짬이 낑낑대며 자료입력하고 표랑 그래프를 만들어서 드디어 그제 월간 소식지 첫번째 호를 보냈다. 후련하다. 하하하.

하지만 덕분에, 첫 단락에서 언급한 멀티태스킹 능력의 부족으로, 본 업무가 약 한 달간 붕 떠있었다. 상부상조의 미덕이 살아있는 세상에서 일하다가, 자기 일이 아닌것은 냉정히 안도와주는 조직에 있다보니 누가 대신 맡아주지도 않는다. 다행인것은 나의 무관심 덕분인지 - 열심히 쪼면 일거리가 많이 생기는 업무라서 - 운이 좋은건지 몰라도 6월에 본 업무에 관련된 일이 적었다는 점이다. 이런걸 천우신조라고 부르나. 물론 열흘 전에 했어야 하는 일을 그제서야 하긴 했지만, 이만하면 큰 펑크는 안났다.

아무튼 좋다. 어차피 이런 일들 외에도 다른 일거리들은 쌓여 있다. 내일부터 다시 하나씩 하나씩..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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